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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된 독립성
독립성은 축하받을 대상인 동시에 두려워할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모닝 페이지는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고 연민을 베푸는 법을 가르쳐준다.
아테스트 데이트는 과감하게 세상 속으로 나아가고 위험을 감수하는 법을 알려준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거의 즉각적인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강력한 도구이다.
아티스트 데이트의 '혼자'라는 측면은 '익숙한 것'을 새로운 빛 속으로 던져 넣는다.
회고록 - 2주 차
나이 : 8세
1. 어디에서 살았는가? 당신의 침실을 묘사하라.
서울로 이사를 갔다.
우리 집은 엄청나게 큰 운동장같이 넓은 방이었다. 2층의.
어찌나 넓은지 동생과 가로지르면서 뛰어다녀도 되었고, 직사각형의 방엔 ㄱ 자로 우리 집의 모든 옷장과 티브이와 가구들로
벽을 둘러싸고 있었다.
거기에서 엄마, 아빠, 나, 동생 이렇게 같이 잤다. 주르륵... 누워서...
2. 주로 누구와 함께 놀았는가? 특별히 큰 영향을 미친 선생님이 있는가?
나는 동생을 항상 데리고 놀았다.
대문을 나서면 비탈진 골목길에서 많은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동생과 스카이 콩콩을 타며,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하기도 하면서 놀았다.
.
특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강원도에서 입학을 하고 서울로 전학을 간 거라.. 선생님 기억이 가물가물)
율동을 많이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난 것은 확실하다. ㅎ
3. 이 시기에 새로운 예술영역에 도전해보았는가?
이 시기에 엄마가 학원을 보내지 않았다. 잠시..ㅎㅎ
오히려 강원도 동해에 있을 때는 피아노와 미술학원을 보냈었는데...
하지만, 학교에서 항상 그림을 그리면 최우수상을 탔다.
그것도 뿌드득하게 자랑할만한 것은
그 당시 한 반에 60명 정도... 그리고 오전 오후반으로 한 학년에 20반이 넘는 어마어마한 인원...
거기서 그림 그려서 최우수상을 받았으니.. 머리 커서 생각하니 정말 놀랍게 느껴졌다..
4. 전에 느껴보지 못한 자유를 이 시기에 경험해보았는가?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이 시기 전에는 또래들과 어울려 놀아본 적이 없다.
고무줄을 한다던지, 모래주머니 던지기를 한다던지 하면서 친구들과 놀아본적이 없었는데
그런 것도 해보고 친구 집에 놀러도 가보았다.
나의 첫 소통의 시작이었다. 또래와의.
5. 무엇이 권태롭다고 느꼈는가?
특정하게 뭘 좋아하거나 호기심을 가진 것이 없었다. 유일한 호기심은 우리 동네 골목 최고 높은 곳에 있는 대저택..
그 집 문이 열리고 그 안을 구경해보고 싶었던 생각? 그 집의 정문인지 후문인지 모르는 계단을 하염없이 혼자 오르락
내리락해본 기억만 있고 모든 게 그냥 대면대면했다. 텔레비전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그림 그리는 것도 그렇고
뭔가 어리지만 재밌는 뭔가는 없었다.
6. 기억나는 냄새를 묘사하라.
마른 멸치, 건오징어 (채친) - 엄마랑 아래층 주인아줌마랑 가끔 같이 앉아서 멸치 박스를 놓고 멸치 똥을 땄다 그리고 하얗고 잘게 쪼개진 건오징어 냄새. 주인아줌마가 건어물 장사를 하셔서..
종종 맡는 냄새.
달고나 뽑기 냄새 - 학교 앞 문구점에서 언제나 도전하던 달고나 뽑기 냄새
7. 이 시기에 친했던 친구(진짜 친구와 상상 친구 모두)를 묘사하라.
기억나는 친구 하나... 나보다 크고 피부가 살짝 까무잡잡했고 언니 같았다. 나를 처음 오르 자기 집에 초대한 친구.
밝고 착한 친구였다. 친구와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났지만 집 가는 방향이 같아서 항상 같이 하교를 했던 것 같다. 친구 집은 우리 집보다 더 꼭대기였다. 눈이 크고 항상 얼굴에 미소가 있는 아이였다. 그건 확실하게 기억남.
8. 이 시기에 가장 좋아했던 음식을 묘사하라.
기억나는 음식은 없음 엄마가 빵 만드는 기구가 있어서 집에서 항상 '카스텔라 빵'을 만들어주었다. 싫든 좋든 만들어
주시면 우유와 함께 먹는 것이다. 추억의 음식. 지금의 대왕 카스텔라 같은 부드러움이야 덜하지만 함께 만들고
빵이 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설렘은 있었다
9. 시간을 보낸 기억이 나는 장소를 묘사하라.
학교 앞 문구점 - 달고나 뽑기를 하러 들리고, 공깃돌을 하러 들리고, 색종이를 사러 들리고,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사러 들리 가장 많이 들린 장소. 나만의 백화점, 만물상 같은 장소.
우리 집 옆 옥상 - 경사진 언덕에 있는 집
골목에서 보면 1.5층 정도로 보이는 우리 집, 반대편에서 보면 동네가 훤하다 내려다 보이는 제법 높은 곳에 위치한 우리 집. 어려서 밤 야경을 즐길 줄 몰랐다. 지금이라면 그랬을 텐데 그리고 제법 넓은 수돗가.. 가끔 엄마가 큰 천막을 내리고 크고 붉은 고무대야? 에 동생과 나를
씻겨주기도 하고 여름 더위를 잊게 해주시기도 하셨다.
10. 이 밖에 떠오른 다른 기억은 무엇인가?
그때 당시 서울의 시내 도로는 지하철 공사로 구멍 난 있는듯한 철판 위로 차가 다녀서 흔들림이 심했다 나는 유독 버스만 타면 울렁증이 심했다. 냄새 때문에.. 그리고 기억에 나는 것은 '미도파'백화점? 인지 '신세계' 백화점인지 모르겠지만 이모, 엄마와 같이 갔었는데... 예전엔 매장마다 유리 진열대가 있었다. 그 투명한 유리 진열대 안에 고상하고 멋진 물건들이 가득가득, 눈이 휘둥그레 졌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언제나 술이 취하면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사 오셨던 아빠.
그때는 냉장고도 집에 있었는데나와 동생은 자다가도 아빠가 "아이스크림, 사 왔다!"라고 하면 벌떡 일어나서 졸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추억이 있는 '투게더' 아이스크림...ㅎㅎㅎ다음 주 명절이 오면 동생과 함께 추억의 '투게더'를
온 가족과 함께 즐겨봐야겠다.
무엇 때문에 엄마와 늦은 밤 큰길 , 어떤 가게에 갔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통금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통금 시간이 되면 사이렌이 울렸다. 엄마랑 인정사정없이 뛰었던 기억이 있다. ㅎㅎㅎ 한 번이지만 잊히지 않는.
주인집 아줌마한테 엄마랑 자주 놀러 갔던 것 같다. 아줌마가 빨래를 개고 있으면 나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아줌마의 브래지어를 내가 해보기도 하고 아줌마의 바지도 , 치마도 입어보곤 했다. 아줌마가 매우 넉넉하셔서 엄마와 내가 둘이 같이 들어가도 넉넉했었다. 엄마 꺼는 그러지도 않으면서 왜 유독 주인아줌마의 옷을 그렇게나 입어봤는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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